인터뷰
요한나 소피 리히터 (커뮤니티 매니저, ZK/U 펠로우: Catalystas Collective︎︎︎)
2022년 1월 24일 이메일 인터뷰
인터뷰
이지영
번역
박설희
인터뷰
이지영
번역
박설희
2022년 1월 6일에 요한나에게 보낸 이메일
요한나에게,
당신이 잘 지내고 있길 바랍니다 :)
저는 당신이 어떻게 홀로코스트에 관한 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그에 관해 저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한국에서는 1980년에 발생한 광주의 5·18민중항쟁 당시 독재정권의 시민학살과 관련된 교육이 이제 전국의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학교와 관계되어 있지 않아서 학생들이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 역사에 관해 간략하게 배운다고만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도시에서 5·18의 현실에 대해 잘 알 수 없었기도 했고, 광주 외에는 학교에서 5·18에 관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5·18에 대해 추모장소나 기념관의 전시를 보고 배워야 했죠. 그런데 문제는 사진자료와 문서기록 위주의 전달방식에만 의존하다 보니 입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거예요.
게다가 아직도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근래까지도 사건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었어요. 항쟁을 그저 폭동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았기에,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비장하고 원통할 수밖에 없었죠. 그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기념공간에서 일그러진 시체의 사진을 보고 5·18을 마주치게 되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곳저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5·18이 올해 42주년이 되었으니, 홀로코스트에 비하면 굉장히 가까운 과거의 사건이지요. 제가 보기에 독일의 홀로코스트 교육은 이미 세대 별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광주에는 5·18에 관한 새로운 교육 방식을 고민하는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홀로코스트와 관련해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알려준다면, 교사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을 것 같아요.
덧붙여 제가 베를린에 있을 때, 학살당한 유대인뿐만 아니라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주를 시도하다 사망한 사람 등, 죽은 사람들에 대한 추모와 기념이 일상에 많이 침투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것에 대해서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지영
당신의 이름과 나이, 국적, 현재 거주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관심사에 대해 알려주세요.
요한나
제 이름은 요한나Johanna입니다. 현재 서른 살이고 독일 작센 주의 켐니츠Chemnitz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지금은 켐니츠의 작은 마을에서 한 커뮤니티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와 시민들에게 힘을 부여하고 활발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큰 관심이 있습니다.
지영
언제 처음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까? 몇 살이었나요?
요한나
제가 홀로코스트 또는 쇼아 Shoah: 히브리어로 홀로코스트를 가리키는 말에 대해 처음으로 더 알게 된 것은 학교에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더 기억이 생생했던 때는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11살이나 12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지영
어떤 과목에서 홀로코스트를 가르쳤나요?
요한나
학교에서 그 주제는 역사 시간에 다루었습니다. 수 년 간 지속적으로 배웠던 주제였어요. 저희의 선생님들은 때때로 바뀌었지만, 두 선생님이 그 주제를 굉장히 깊게 다루었던 게 기억나요. 학교 수업에서는 홀로코스트를 제2차 세계 대전 위주의 틀 안에서 가르쳤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다른 관점이나 심지어 유대인 공동체의 관점도 아닌, 순전히 독일인의 관점에서 진행된 수업이었던 것 같아요.
지영
수업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배웠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요한나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역사의 산 증인을 만나는 기회 Zeitzeugengespräch는 없었고, 수용소나 기념관에 방문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하나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제목은 “밤과 안개 Night and Fog, 1956”로, 나치 정권 하의 수용소와 홀로코스트를 다룬 프랑스 다큐멘터리예요. 우리는 7학년인가 8학년 즈음 역사 수업 시간에 그 영화를 봤어요. 끔찍하고 무서운 영화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 수용소나 언제 무슨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배웠지만, 주로 1933년과 1945년에 사이에 일어난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1945년 이후의 일은 잘 배우지 못했죠. 학교에서는 유대인 공동체의 관점이나, 유명한 ‘아이히만Eichmann’ 재판에 대해 토론을 한 적도 없습니다.
지영
독일 도시의 이곳저곳에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나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것을 볼 때 어떤 기분이나 생각이 드는지요?
요한나
독일 내 많은 도시에 슈톨퍼슈타인*︎︎︎이라 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작업은 예술가 귄터 뎀니히Gunter Demnig의 프로젝트예요. 민족사회주의 (나치)의 시대에 박해받고, 살해되고, 추방되거나 자살하도록 몰린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작은 명판을 땅에 새겨 두는 작업이지요. 켐니츠나 다른 도시를 걷다 보면 이 슈톨퍼슈타인이 보이는데, 그때마다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이러한 명판은 과거를 더욱더 현실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지요.
*Stolpersteine: 나치 시절 학살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집 앞 보도에 길에 박힌 돌멩이를 닮은 작은 동판에 희생자의 이름, 출생연도, 추방일, 사망일과 장소 등을 새겨 놓은 것
1938년 11월 9일에 ‘수정의 밤Reichspogromnacht’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나치 돌격대와 일부 독일인들이 유대인 상점, 회당, 다른 기관 등에 불을 지른 사건이예요. 요즘 켐니츠에서는 11월 9일에 지역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 ‘촛불 걷기Lichterweg’라는 모임을 만들어, 그 끔찍한 날을 기억하고 살해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슈톨퍼슈타인 옆에 작은 초를 밝힙니다. 저는 이 작은 행사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집단으로 기억하는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다닐 때 이렇게 기억과 우리의 역사를 다루는 풍부한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Stolpersteine: 나치 시절 학살된 사람들이 거주했던 집 앞 보도에 길에 박힌 돌멩이를 닮은 작은 동판에 희생자의 이름, 출생연도, 추방일, 사망일과 장소 등을 새겨 놓은 것
1938년 11월 9일에 ‘수정의 밤Reichspogromnacht’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나치 돌격대와 일부 독일인들이 유대인 상점, 회당, 다른 기관 등에 불을 지른 사건이예요. 요즘 켐니츠에서는 11월 9일에 지역의 의식 있는 사람들이 ‘촛불 걷기Lichterweg’라는 모임을 만들어, 그 끔찍한 날을 기억하고 살해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슈톨퍼슈타인 옆에 작은 초를 밝힙니다. 저는 이 작은 행사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집단으로 기억하는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다닐 때 이렇게 기억과 우리의 역사를 다루는 풍부한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