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제인 (예술가)
2021년 12월 20일 대면 인터뷰와
2022년 1월 19일 이메일 인터뷰
인터뷰
이지영
번역
황제인
2022년 1월 19일 이메일 인터뷰
인터뷰
이지영
번역
황제인
Cloudchoir for our Beloved (2020), Photo by Dongryoung Han
지영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제인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 황제인입니다. 저는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 짓는 경계에 관한 연구를 시간 기반 미술로 표현합니다. 특히, 우리의 과거사를 바탕으로한 학제 간 연구와 더불어 기념문화의 디지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아트 인 컨텍스트”에서 석사과정 중입니다.
지영
“운창단”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의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제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동료 작가들과 다양한 언어로 함께 부른 프로젝트 CloudChoir for our Beloved(운창단), 2020는 우연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19년겨울, 사운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원본을 재생하여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과 함께 들어본 적이 있어요. 역사적 배경이나 곡이 녹음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그 자리에 있던 청자 모두가 곡이 전달하는 긴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사를 몰라도 곡의 진행과 분위기가 자기 나라의 민중가요를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지금 시대에도 즉각적으로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그 경험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감상을 통해 나눈 공감대를 노래를 부르는 행위로 확장시키고, 이를 통해 언어와 지역을 뛰어넘는 아시아 작가들 간의 연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처음부터 협업을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기획해 나갔고, 그 때문에 제목 'CloudChoir’도 참여작가들이 자신이 위치한 곳 어디에서든 녹음을 하고 음원을 업로드하여 합창한다는 의미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영문 제목인 ‘Marching for our Beloved’를 결합하였습니다.
작품은 영상과 함께 20분 길이의 카세트테이프로 제작이 되었는데, 이는 물론원곡이 최초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이 되어 배포된 점을 차용한 것입니다. 카세트테이프는 독특한 익명성을 지닌 매체입니다. 미리듣기가 가능한 디지털 음원과는 달리, 청자는 재생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전혀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카세트테이프가 소리를 풀어나가는 선형적인 방식에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음악은 즉각적으로 건너뛰거나 처음으로 되돌아가 재생할 수 없습니다. 건너뛰기 위해서는 빨리 감기를 누른 상태로 테이프가 앞으로 감기는 시간이 소요되고, 또 음악을 처음부터 듣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감상을 한 뒤, 테이프를 돌려 꽂는 방식이니까요.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함으로써 음악을 듣는 행위를 조금은 불편하고도 수고스럽게 만들고싶었고, 이를 통해 청자에게 더욱 적극적인 감상 행위를 요구하고자 했습니다.
Cloudchoir for our Beloved, 2020, Compact cassette, 20 mins, 50 edition
1-ch. video installation, 4:45, HD, sound 2020
Photo by Dongryoung Han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여 지금 시대에도 즉각적으로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그 경험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감상을 통해 나눈 공감대를 노래를 부르는 행위로 확장시키고, 이를 통해 언어와 지역을 뛰어넘는 아시아 작가들 간의 연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처음부터 협업을 염두에 두고 프로젝트를 기획해 나갔고, 그 때문에 제목 'CloudChoir’도 참여작가들이 자신이 위치한 곳 어디에서든 녹음을 하고 음원을 업로드하여 합창한다는 의미와 ‘임을 위한 행진곡’의 영문 제목인 ‘Marching for our Beloved’를 결합하였습니다.
작품은 영상과 함께 20분 길이의 카세트테이프로 제작이 되었는데, 이는 물론원곡이 최초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이 되어 배포된 점을 차용한 것입니다. 카세트테이프는 독특한 익명성을 지닌 매체입니다. 미리듣기가 가능한 디지털 음원과는 달리, 청자는 재생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전혀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카세트테이프가 소리를 풀어나가는 선형적인 방식에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음악은 즉각적으로 건너뛰거나 처음으로 되돌아가 재생할 수 없습니다. 건너뛰기 위해서는 빨리 감기를 누른 상태로 테이프가 앞으로 감기는 시간이 소요되고, 또 음악을 처음부터 듣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감상을 한 뒤, 테이프를 돌려 꽂는 방식이니까요.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함으로써 음악을 듣는 행위를 조금은 불편하고도 수고스럽게 만들고싶었고, 이를 통해 청자에게 더욱 적극적인 감상 행위를 요구하고자 했습니다.
Cloudchoir for our Beloved, 2020, Compact cassette, 20 mins, 50 edition
1-ch. video installation, 4:45, HD, sound 2020
Photo by Dongryoung Han
지영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였는지 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
제인
먼저, 노래가 불리는 언어를 아시아 지역 언어로 한정 짓고 참여 작가를 모집했습니다. 참여 작가의 모집 조건은 무엇보다도 아시아 지역의 자유와 인권을지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습니다. 페이스북에 오픈 콜을 게시하고, 학과 내에 단체 이메일을 발송하고,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최종적으로 9명의 참가자를 확정하였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소개와 리서치 자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작가들과 공유하였고, 여러 국가의 언어로 번역 또는 번안된 가사를 첨부하였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영문 번역본을 바탕으로 하여 각자의 언어로 된 가사를 검토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에 번역본이 없던 텔루구어와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를 작가들이 직접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참여 작가들의 용기와 수고가 깃들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참여 작가들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원하는 템포로 노래를 부를것을 요구하고, 그 모습을 촬영하여 파일을 업로드할 것을 요청했어요. 원한다면 익명으로 촬영을 할 수 있으며, 보이스 필터나 페이스 필터를 사용하거나 목소리만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안내를 했습니다.
텔루구어 번역을 진행했던 인도의 젊은 작가는 카메라 앞에서 신분이 노출되는것에 위기감을 느껴, 번역에 도움을 준 스페인 작가만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한 아르헨티나 뮤지션은 우연한 계기로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는데, 기획의도에 깊이 공감하여 참여하고 싶지만 노래를 부를 만큼 아시아 언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며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언어인 음악으로 표현을 해도 되겠느냐고 연락을 해왔어요. 결국 카메라 앞에서 직접 편곡한 곡을 기타로 연주하는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광동어로 노래를 부른 아시아계 미국 작가는 유창하지 않은 언어실력에도 불구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용감하게 노래를 불러주었고요. 작가들이 보내온 영상과 음원마다 느껴지는 저마다의 공간감을 최대한 유지하여 영상을 자르고 합쳐 4분 45초의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와 포스터를 함께 제작했는데, 카세트테이프의 경우, 참여 작가들의 음원을 편집없이 연결하였고, 앞뒤로 나레이션을 첨부하였습니다. 20분 길이의 재생시간이 하나의 여정과도 같이 느껴지도록 만들었어요. 시각적으로는 언뜻 실험적인 독립 레이블의 앨범처럼 보이기를 바랐는데, 역사적 사건의 무게감이 보는 이를 압도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덜어내며 기획을 해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카세트테이프 자켓에는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설명과 사진을 몇 가지 첨부하고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디자인을 맡아 준 동료 작가가 5·18 당시의 사진은 딱 한장만 남기자고 하더라고요. 부연설명을 최소화하고 곡의 가사에 집중한 디자인은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 50개의 카세트테이프와 100장의 포스터를 만들었고,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참여 작가들에게 각각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한 개는 본인을 위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들려주고 싶은 누군가에게 보내기를 바라면서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보낸 편지봉투가 분실이 되는 바람에 다시 발송을 한 것 빼고는 별다른 사고 없이 모두 잘 도착했습니다.
Video Still, Cloudchoir for our Beloved, 2020 1-ch. video installation, 4:45, HD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소개와 리서치 자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작가들과 공유하였고, 여러 국가의 언어로 번역 또는 번안된 가사를 첨부하였습니다. 참여 작가들은 영문 번역본을 바탕으로 하여 각자의 언어로 된 가사를 검토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에 번역본이 없던 텔루구어와 바하사 인도네시아어를 작가들이 직접 번역을 하였습니다. 이렇듯 참여 작가들의 용기와 수고가 깃들어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참여 작가들에게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에서 원하는 템포로 노래를 부를것을 요구하고, 그 모습을 촬영하여 파일을 업로드할 것을 요청했어요. 원한다면 익명으로 촬영을 할 수 있으며, 보이스 필터나 페이스 필터를 사용하거나 목소리만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안내를 했습니다.
텔루구어 번역을 진행했던 인도의 젊은 작가는 카메라 앞에서 신분이 노출되는것에 위기감을 느껴, 번역에 도움을 준 스페인 작가만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한 아르헨티나 뮤지션은 우연한 계기로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는데, 기획의도에 깊이 공감하여 참여하고 싶지만 노래를 부를 만큼 아시아 언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며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언어인 음악으로 표현을 해도 되겠느냐고 연락을 해왔어요. 결국 카메라 앞에서 직접 편곡한 곡을 기타로 연주하는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광동어로 노래를 부른 아시아계 미국 작가는 유창하지 않은 언어실력에도 불구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용감하게 노래를 불러주었고요. 작가들이 보내온 영상과 음원마다 느껴지는 저마다의 공간감을 최대한 유지하여 영상을 자르고 합쳐 4분 45초의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카세트테이프와 포스터를 함께 제작했는데, 카세트테이프의 경우, 참여 작가들의 음원을 편집없이 연결하였고, 앞뒤로 나레이션을 첨부하였습니다. 20분 길이의 재생시간이 하나의 여정과도 같이 느껴지도록 만들었어요. 시각적으로는 언뜻 실험적인 독립 레이블의 앨범처럼 보이기를 바랐는데, 역사적 사건의 무게감이 보는 이를 압도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많은 부분을 덜어내며 기획을 해나갔습니다. 그럼에도, 카세트테이프 자켓에는 기본적인 역사적 배경설명과 사진을 몇 가지 첨부하고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디자인을 맡아 준 동료 작가가 5·18 당시의 사진은 딱 한장만 남기자고 하더라고요. 부연설명을 최소화하고 곡의 가사에 집중한 디자인은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렇게 50개의 카세트테이프와 100장의 포스터를 만들었고,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참여 작가들에게 각각 두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한 개는 본인을 위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들려주고 싶은 누군가에게 보내기를 바라면서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보낸 편지봉투가 분실이 되는 바람에 다시 발송을 한 것 빼고는 별다른 사고 없이 모두 잘 도착했습니다.
Video Still, Cloudchoir for our Beloved, 2020 1-ch. video installation, 4:45, HD
지영
작업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요?
제인
더욱 다양한 국가 출신의 참여 작가를 모집하는 일은 여전히 아쉬움으로남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크메르어와 버마어, 태국어로 불렸던 기록이 남아있지만, 이 프로젝트에는 해당 국가 출신의 참여자가 없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오픈 콜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들을 추가로 모집하는 글을 올리고, 급기야 프리랜서 성우를 고용하는 플랫폼을 통해 각 언어를 사용하는 성우들을 찾아 수십 건의 메세지를 발송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원한다면 철저히 익명으로 진행할 수 있으며, 노래가 어렵다면 나레이션이라도 좋다고 말이죠. 처음에는 프로젝트 의뢰에 관심을 보이던 성우들이 자세한 내용을 공유하자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 거절했습니다. 녹음료를 벌기 위해 정치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답변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생각하니, 안일했던 저의 태도가 부끄러워졌어요.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부를 수 있는 자유라는 이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따를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 국가 각각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더욱 세밀한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프로젝트를 홍보하여 참여자를 모집하고, 또 그들을 설득하고 믿음을 줄 수 있는 건 기관의 역할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관을 컨택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번역에 수고한 참여 작가들에게 조금이라도 아티스트 피를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5·18 관련 재단에 연락하여 후원을 요청 드린 적이 있습니다. 흔쾌히 관련 자료를 보내 달라하시기에 프로젝트 소개와 함께 후원요청서를 준비하여 보내드렸더니, 아무런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쉽지만, 기관의 도움 여부와는 상관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다행히, 베를린 예술대학 내 학생자치단체에서 심사를 통해 프로젝트 제작에 대한 재료비 명목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전시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작품 제작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어야만 5·18에 대한 담론이 예술 언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관련 자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5·18기념재단의 경우, 우리말 홈페이지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 페이지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영문 홈페이지에는 해당 내용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역시 국문과 영문 홈페이지 사이에 정보가 불균형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여러 아시아 국가의 언어로 번역, 번안되어 자발적으로 불렸지만, 재단이나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수집하고 공개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부정확할지도 모르는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이렇게 창작자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당황했지만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생각하니, 안일했던 저의 태도가 부끄러워졌어요.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부를 수 있는 자유라는 이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따를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아시아 국가 각각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더욱 세밀한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더욱 광범위하게 프로젝트를 홍보하여 참여자를 모집하고, 또 그들을 설득하고 믿음을 줄 수 있는 건 기관의 역할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관을 컨택하고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번역에 수고한 참여 작가들에게 조금이라도 아티스트 피를 지급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5·18 관련 재단에 연락하여 후원을 요청 드린 적이 있습니다. 흔쾌히 관련 자료를 보내 달라하시기에 프로젝트 소개와 함께 후원요청서를 준비하여 보내드렸더니, 아무런 답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쉽지만, 기관의 도움 여부와는 상관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습니다.
다행히, 베를린 예술대학 내 학생자치단체에서 심사를 통해 프로젝트 제작에 대한 재료비 명목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전시에 대한 지원 뿐 아니라, 작품 제작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어야만 5·18에 대한 담론이 예술 언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은, 관련 자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5·18기념재단의 경우, 우리말 홈페이지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 페이지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영문 홈페이지에는 해당 내용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역시 국문과 영문 홈페이지 사이에 정보가 불균형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여러 아시아 국가의 언어로 번역, 번안되어 자발적으로 불렸지만, 재단이나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수집하고 공개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부정확할지도 모르는 인터넷 검색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이렇게 창작자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지영
이 작업을 더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요? 있다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제인
앞서 말씀드린 점들을 보완해서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시키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를 추가해나가며 2집, 3집을 발매한다면 아시아 전 지역 언어를 아우르는 재미있는 아카이브가 되겠죠. 아시아 지역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고어나 사어가 많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멸종 위기에 처한 언어를 보존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그 당시 시대성을 반영해 개사가 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 쓰이고, 새로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이 이후로는 예술가 개인의 영역을 넘어 기관의 적극적인 도움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형성해야 하며, 참여자들이 가사를 검토하고 번역이나 번안, 개사를 하는데 들이는 수고 또한 보상받을 수 있어야합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기록을 만들고, 아카이브를 확장시켜 나가야만 ‘임을 위한 행진곡’이 지니는 대표성과 영향력이 시대를 거듭하여 새로운 맥락을 재생산해낼 자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지영
5·18과 관련하여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제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작으로 하여 저항을 상징하는 소리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학생운동에서는 박자와 음을 맞춰 부르는 노래나 함성, 구호 뿐 아니라 듣기 거북한 소리로 간주되는 소음, 고함 등 다양한 소리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가끔은 잘 만들어진 노래 한 곡보다도, 구호 사이사이에 흘려말하듯 터져 나오는 고함, 누군가 울분을 터뜨리며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외침이 시대를 표현하는 소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문화권의 저항운동에 등장했던 수많은 소리들 중, 음악이나 구호와 같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지않은 소음, 즉 해결되어야만 하는 불협화음*을 찾아 시대적 패턴을 들여다보는일도 흥미로울 것 입니다. 현 젊은 세대의 저항이라면, 소리보다는 밈이나 짤 등으로 대변될 수 있겠네요.
* 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접한 Fred Moten의 저서 에서는 저자는 미국 피아니스트인 Charles Rosen의 말을 인용하는데, 음악적으로 불협화음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소리이며, 불협화음과 협화음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귀나 신경계가 아닌, 당시 시대가 정의한 지배적인 음악 양식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 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접한 Fred Moten의 저서 에서는 저자는 미국 피아니스트인 Charles Rosen의 말을 인용하는데, 음악적으로 불협화음은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소리이며, 불협화음과 협화음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귀나 신경계가 아닌, 당시 시대가 정의한 지배적인 음악 양식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지영
본래 죽음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요? 죽음과 관련해서 진행했거나 계획 중인 다른 리서치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제인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죽음을 조명하게 된 것인지, 죽음에 대한 관심 때문에 역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지 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상태를 나누는 경계가 늘 궁금하고, 죽음으로 인해 더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속마음이 궁금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관한 것입니다. 이름도 없이 시대로부터 망각되길 강요당한 희생자를 우리가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19년부터 리서치를 시작해서 지금은 작품 제작 단계에 있습니다. 운 좋게도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리서치 기금을 지원받아 긴 호흡으로 폭넓은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리서치 기간이 길었던 만큼, 해당 사건에 대한 경험의 부재와 사건 당사자와 창작자인 저 사이의 세대 간의 간극을 메우고, 개인적이지 않은 기억을 나의 기억으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결과물은 인터랙티브한 웹사이트로 제작이 되어, 기억문화의 동시대성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지영
그 외에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는지요?
제인
개인적인 프로젝트 외에 여러 작가, 비평가들과 함께 글로써 교류하는 매체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유럽사회에서 생활을 하고, 활동을 하다 보니 비서구권 사회 구성원간의 연대가 더욱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비식민지화 혹은 탈식민지화와 같은 담론은 주로 과거의 가해자였던 서구 사회와 피해자였던 비서구 사회 간의 화해 혹은 화합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에 반해, 저마다 다른 피지배의 기억을 공유하는 비서구권 사회들 간의 연대는 현저히 부족합니다. 이렇듯, 당사자들 간의 대화를 넘어선 탈국가적 이해와 치유의 역할을 글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저에게도 한 사회와 집단을 가장 내밀하게 만날 수 있는 매체가 글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1인 출판사 등록을 진행하는 중인데, 매년 ‘비식민지화’ 라는 큰 범위 내에서 비서구권 출신의 작가, 비평가들이 글을 게재한 잡지 한 권과 단행본 한 권을 펴는 것이 목표입니다. 출판과 더불어 비평가 레지던시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둘 다 계획의 시작 단계라 올 한 해 동안 구체적인 운영방법을 고민하고 차근차근 실행해보려 합니다.